중간자(13)

by 서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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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중근의 마음이 더 급했다.
김진일은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 서둘렀겠지만 중근에게도 꽤 오래전부터 김진일의 정체가 궁금했기에 갑자기 닥친 기회를 옳구나싶어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김진일이 이씨를 통해 추진의사를 타진한지 이틀만에 중근을 비롯한 후배 여섯명이 김진일의 집을 방문했다. 이씨를 포함하면 일곱명이 되는 셈이었다.
첫날은 점심식사를 대접한다기에 여섯명이 조금 일찍 만나서 골짜기를 걸어서 올라갔다.
중근은 이씨를 제외한 여섯명에게는 골짜기 이층집의 노인에 대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선입견을 줘서 노인이 눈치를 채면 그가 어떤 사람이던간에 서로가 어색하게 되고, 중근이 생각하고 있는 일의 진행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궁금하기만했던 자그마한 정원을 둘러보았다. 예전의 정원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중근은 한번쯤 와 볼수도 있었겠지만 이상스럽게도 노인과 마주치기가 싫었던 마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또 하나 궁금한것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없앴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인지도 그러하거니와 어떻게 이층을 오가는지도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웅성거리고 있는 사이에 1층 부엌에서 이씨가 부인을 도와주다가 활짝 반기는 얼굴로 나왔다.
“아이구! 귀한 손님들이 오셨네. 내가 사장님께 연락할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게, 응”
이씨는 늘 궁핍하여 아우들한테 베풀기가 힘들었는데, 김진일 덕분에 사람노릇 하는 기회를 얻어 자신감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사장님! 여기 손님들이 오셨네요!”
2층을 올려다 보며 고함을 질렀다.
사실 중근은 2층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노인을 슬쩍보았기 때문에 이씨 선배가 고함을 지르면 일부러 맞춰서 내려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주방 안쪽에 거실로 가세. 준비는 다 돼 있어”
이씨는 애써가며 중근과 일행을 1층 거실로 몰아넣다시피 했다. 중근은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2층에 오르내리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않아서 미리 지시를 해놓은 것으로 판단했다.
거실로 들어서자 돼지고기 수육이며 잡채와 부추전을 푸짐하게 차려 놓았다.
일행은 주인이 올 때를 기다리며 이구석 저구석을 둘러보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이 들리더니
“귀한 손님들이 오셨네”하고 김진일이 거실로 들어섰다.
일행이 우르르 일어서며 인사를 하는데 김진일은 일행을 일일이 앉히며 악수를 나눴다.
중근은 악수를 나누는 김진일의 손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애써 웃으며 얼굴을 마주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는 이미지에 복선을 깔고도 남을 관상이 담겨 있었다.
“오늘은 우리 처음보는 날이니까 기분좋게 먹고 놀다가 가는것으로 합시다”
김진일의 제안에 일행은 반색을 하며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근은 음식조차 썩 내키지가 않았는데 동네 형수가 차렷으니 먹는 시늉은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일행들은 눈치없이 너도나도 김진일의 신상에 대해 질문들을 쏟아냈다.
질문에 적당히 둘러대던 김진일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일행을 보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오늘같이 뜻깊은 날 술이 없어서야 될일인가?내가 좋은 술을 한잔씩 대접함세. 모자라면 주방에 소주를 사뒀으니 더 자시면 되네”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일행은 양주를 가져오려나하고 기대감 속에서 잡담을 이어갔다.
그런데 일행의 기대와는 달리 스테인레스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나는 따끈하게 데워서 마시는데, 젊은 친구들이라 시원하게 드릴테니 한잔들 하시게나”
김진일은 선채로 돌아가며 술을 권했다.
중근의 차례가 되었을 때 중근도 다른 사람들 처럼 적당히 일어나 예를 갖추며 두손으로 술을 받았다. 꽤나 손때가 묻은 듯한 주전자를 언뜻 봤을 때 중근은 심장이 한 순간 멈추는 듯한 충격이 왔다. 그것은 분명 욱일기 문양이 중근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중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술잔을 가만히 내려 놓았다. 건배를 부르짖을 것 같지만 손의 떨림을 들킬것만 같아서였다.
“주전자가 귀하게 생겼어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 같아요”
중근의 느닷없는 질문에 김진일은 일곱번째 술을 따르다 말고 잠시 중근을 바라보았다.
순간 중근은 눈빛속의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금방 표정을 바꾸면서
“아, 이 주전자는 내가 재일교포로 일본에 있을 때
선친께 물려받은 걸세. 나한테는 아주 소중한 주전자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고는 건배를 제안했다.
중근은 술을 입에 대다말고 이 자리를 떠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스럽게도 속이 거북하고 어지럼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참, 내 정신 좀봐라. 면사무소 산업계장이 집옆에 농지 복토관계로 오기로 했는데 깜박하고 있었네. 점심먹고 온다고 했으니 지금 와 있을 수도 있겠네. 지난주에 약속한것을 그새 잊고 있었네”
중근은 모든것을 무시하고 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있다가는 쓰러질것만 같았다.
“빨리 끝나면 다시 오께요”
급하게 나오면서, 다시와도 되고 안와도 되는 인삿말을 등뒤로 흘리듯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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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댓글

그림282 2025년 03월 05일 - 10:06 오전

헐 대박! 스릴 넘치네~

답글
찐새임 2025년 03월 05일 - 10:09 오전

2층에 있던 계단은 왜 없앴지? 욱일기 대박

답글
쌉소리 2025년 03월 05일 - 10:10 오전

완전 흥미진진!!

답글
가을비 2025년 03월 05일 - 10:12 오전

뭐야 뭐야? 음식에 뭘 탄거임? 헉~~

답글
ms560 2025년 03월 05일 - 10:13 오전

잘 읽고 갑니다. 재밌네요!!

답글
fafa 2025년 03월 05일 - 10:15 오전

중근의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이네요~

답글
은근슬쩍1 2025년 03월 05일 - 10:16 오전

슬슬 흥미진진해 지는군요.. 더 위기있게 써주세요!! 작가님 담편 기대됩니다,.

답글
shot7 2025년 03월 05일 - 10:17 오전

연재 소설이 이런 맛이지 ㅋㅋ

답글
tts32s 2025년 03월 05일 - 10:21 오전

허걱~ 욱일기 문양의 주전자! 일본인들의 자부심이니 티가 나지나!! 중근 화이팁

답글
김기k 2025년 03월 05일 - 11:32 오전

나왓따 나왔다!! 13화

답글
gggi 2025년 03월 06일 - 6:38 오후

드디어 탐색이 시작됐군!! 음식을 먹은 사람들 어떻게 되는거지?

답글
강기철 2025년 03월 07일 - 5:09 오후

자 이제 중요한 한 사람은 대강의 의중은 알게 된 것 같고 이제는 나머지 분들의 향방이 궁금해 집니다… 무슨 일이든 혼자서 할 수 있는 잘 없으니까요.. 더욱이 사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은 말이죠… 오늘 이 땅의 무소불위 검찰의 어의없는 아니면 계산된 실수를 보았습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웃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내란 수괴의 구속을 풀어 주라니요… 참…. 이런 짜증 나는 가운데 바쁘신 와중에도 이처럼 좋은 글을 단비처럼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안 하시고 좋은 날 되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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