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자(24)

by 서상조
A+A-
리셋

저녁식사는 중근의 집에서 다 함께 간단하게 마쳤다. 어둑해질 무렵에 기름통을 들고 출발하는 귀성이에게 중근은 등산용 베낭을 내 주었다. 어둑한 산길에 손이 자유로워야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처할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루마리식 호스를 30m쯤 잘라서 다시 간편하게 말아 주었다. 귀성이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중근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매사에 눈썰미가 있고 어떤 일이 닥쳐도 재치있게 처리하는 귀성이는 자신의 안전을 위한 조치란것을 바로 알아 차린 것이었다.
“귀성이 너도 잘 알다시피 이층집 바로 뒤에는 대나무 밭이지만, 패널로 지은 부속 건물 뒤쪽에는 바위가 산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이어져 있잖아. 그 바위의 끝에서 호스를 쓰는거야. 알았지?”
중근은 노파심에서 귀성이가 알고도 남을 일을 굳이 말로 꺼내고 있었다.
9L 의 기름을 베낭에 메고 나서는 귀성이에게 중근은 마지막 당부를 했다.
“귀성아, D Time은 9시야!”
귀성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목적지의 너머 쪽 골짜기를 향했다. 귀성은 시간이 충분했기에 느긋하게 걸으면서 성공적인 작전수행을 위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었다. 달완이 할머니의 나쁜소식까지 듣고서는 억누르고 있는 분노가 귀성의 심리적 기저에 마그마처럼 뭉쳐 있었던 것이다.
산 모퉁이를 돌아 이층집 너머의 골짜기를 꽤 깊숙이 들어가서 가끔 다니던 산길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어두워진 산길을 후레쉬도 없이 오직, 기억과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서 더듬다시피 올라갔다. 같은 길이라도 조명의 유무에 따라서 느낌이 너무 달랐다. 낮에 오를 때는 휘파람을 불면서 노간주 나무나 오리나무들을 보며 수목의 다양성을 즐기는 여유로운 기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늘 지나치던 불룩솟은 바위마저도 자신을 흠짓 놀라게 했다. 조명이 여유와 두려움을 마술처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산에서는 산다람쥐 같은 귀성이기에 산등성이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공제선이 소의 등처럼 횡으로 편안하게 뻗쳐 있었다. 단 걸음에 등성이에 바로 올라서자 시원한 밤바람이 귀성이를 맞아주었다. 등성이에 올라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또 한번 소중한 성취를 이루는 기분이었다.
100여 미터 아래에 이층집의 불빛이 보였다. 조금은 멀리 산모퉁이 쪽 마을의 불빛이 산중턱까지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귀성이는 그 희미한 불빛이 몹시 거슬렸다. 더 신중하고 몸을 굳이 숨겨야 될 이유가 되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귀성은 천천히 몸을 숨기며 내려가면 약속 시간과 일치할것으로 생각했다. 이층집을 향한 쪽은 길이 없을 뿐더러 휴대폰도 사용할수가 없었다. 마을의 불빛이 멀리까지 희미하게 번지듯 와준것에 의존하며, 또 그것을 경계하며 내려갔다. 얇게 층을 이루는 바위라서 동네서 층석바위라 부르는 곳의 끝머리까지 도착한 귀성은 중근의 준비성에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며 접근할 필요가 없었다.
이순신장군이 전승을 거둔것은 부하를 아끼는 마음에서 승리의 요건을 갖춘후에 출전하기 때문이었듯이 중근형님의 동생 사랑이 이순간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귀성은 감겨있는 농사용 호스의 끝을 야무지게 쥐고서 나머지를 바위 아래로 굴렸다. 롤 빵처럼 감겨있던 호스는 층석바위의 경사를 타고 이층집의 부속건물을 향하여 풀려나갔다. 그런데 마지막 3미터 정도를 남기고 무게가 가벼워진 탓에 멈추고 말았다. 바위틈의 가녀린 풀에 걸려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만것이다.

관련 뉴스

12 댓글

나라걱정 2025년 07월 04일 - 11:22 오전

헉!!! 큰일이다…우짜지? ㅠㅠ

답글
2025년 07월 04일 - 11:26 오전

24화다 짠!!!

답글
소설가 2025년 07월 04일 - 11:26 오전

24화다 짠!!!

답글
착한 엘리스 2025년 07월 04일 - 12:38 오후

잘 읽고 갑니다^^

답글
사람친구 2025년 07월 04일 - 1:28 오후

계획의 차질이?

답글
김귀성 2025년 07월 04일 - 6:47 오후

와우 제가 소설속의 한 인물이라니…감개무량합니다. 한 시대의 풍운아가 되렵니다.오늘 댓글은 요기까지…

답글
강기철 2025년 07월 08일 - 10:08 오전

아! 마지막까지 정말 단숨에 한 숨에 다 읽어 내려갔는데 호스의 끝이 ……. 참나 속이 타서 .. 참…. 몇번을 혼잣말을 했는지.. 그 참 호스가 그렇지 참…

답글
따따블4545 2025년 07월 08일 - 6:46 오후

호스…..호스!!!!

답글
이경수 2025년 07월 08일 - 6:47 오후

갈 수록 소설이 맛이 나네요 ㅋ

답글
김만섭 2025년 07월 08일 - 6:47 오후

좋은 소설 잘 읽고 갑니다!!

답글
푸른 2025년 07월 08일 - 6:48 오후

소문 듣고 왔습니다!! 1화부터 정주행갑니다^^

답글
몽이 2025년 11월 26일 - 9:22 오후

풀 뜯어버리면 안되나!!

답글

댓글을 남겨 주세요

발행소 : [40135]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1길 7-1(헌문리) | 대표전화 : 010-6500-3115 | 사업자 : 뉴스파이크 | 제호 : 뉴스파이크
등록번호 : 경북 아00799 | 등록일 : 2024-07-22 | 발행일 : 2024-10-15
발행인 : 이길호 | 편집인 : 김복순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길호 | 청탁방지담당자 : 진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