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성은 한참을 망설였다. 내려가서 호스를 펼쳐놓고 올라와야 할텐데, 호스가 걸린 곳에는 틀림없이 CCTV가 촬영되고 있는 영역일 것이기에 고민에 빠졌다.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 있던 귀성은 호스의 끝 부분을 손으로 세심히 만져 보았다. 의외로 호스가 부드러웠다. 가뭄이 들었은 때 양수기로 논에 물을 공급할 때 쓰는 호스이기에 값싸게 만들 필요가 있는 호스였다. 물이 공급되면 부풀었다가 물이 공급되지 않을 때는 납작해지는 것이었다. 흔히 나일론이라고 일컫는 포리 에틸렌보다는 저렴한 포리 프로필렌으로 얇게 제직을 한 후에 내부에 비닐 코팅을 한 것이었다. 귀성은 호스를 만져 본 후에 자신의 판단에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기름통의 두껑을 연 후에 호스의 끝을 기름통 주입구에 덮어 씌운 다음에 손으로 단단히 움켜 잡았다. 그리고는 한 순간에 기름통을 눕히면서 호스 안으로 기름이 세차게 흘러들도록 만들었다. 귀성은 쓰나미 효과를 생각했던 것이다.
물체를 겨우 식별할수 있을 정도의 어둑함 속에서도 호스를 타고 내려가는 기름의 파고를 볼수 있었다. 어릴적 소먹이러 갔다가 뱀이 커다란 개구리를 삼켰을 때 모습이 연상 되었다. 귀성은 불과 몇초 사이에 우주의 변화를 다 느낄듯 기나긴 흐름을 가져보았다.
기름의 쓰나미가 드디어 풀에 걸린 호스까지 도달했다. 호스는 마지막 부분이 채 풀리기 전에 풀에 걸렸기 때문에 상당한 충격을 주면 풀을 밀고내려갈 것으로 생각했다. 호스의 끝 부분은 한번 충격에 움찔하는 것을 희미하게 볼수도 있었거니와 호스를 잡고있는 귀성의 손 끝에서도 느낄수 있었다. 아래쪽에서 ‘훅’하고 잡아 당기는 듯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고요했다. 순간 귀성은 노출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래로 내려가서 호스를 풀고 불을 지른 후에 산의 정상쪽으로 넘어가서 당분간 마을로 돌아오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스를 잡고 있던 손에서 호스를 놓으려는 순간 무게감이 없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큰고기를 낚시로 잡아채다가 놓쳤을 때의 허망함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환희의 순간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내려다보니 호스는 제대로 풀려 내려가고 호스에 갇혀있던 기름도 모두 부속건물쪽으로 함께 흘러든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처음 충격 때에 막아섰던 풀의 대궁이가 어느 정도 누우면서 호스에 차 있던 기름의 압력이 중력의 힘을 더해서 호스의 마지막 부분을 아래쪽으로 밀고 내려간 모양이었다.
귀성은 서둘렀다. 기름통과 벗은 장갑은 뒤쪽으로 멀찌감치 물려놓았다. 손을 깨끗이 한 후 라이터로 호스의 끝부분에 불을 붙였다. 불은 시퍼렇게 붙어 내려가면서 호스는 두꺼비 등이 터지듯이 중간 중간에 ‘퍽! 퍽!’하고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귀성은 부속건물에 불이 붙는것을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기에 기름통과 장갑을 챙긴 후에 산등성이를 따라 충분하다싶을 만큼 올라갔다.
휘발유가 패널로 된 부속건물 뒤쪽에 몰려있는 낙엽과 함께 타는지 큰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밝은 불꽃이 조명탄을 피운것 처럼 환하게 빛을 뿜었다.
아직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지만 귀성의 마음은 급하기 그지없었다. 누군가 불을 끄기전에 패널의 마감부분에 처리된 실리콘이 녹고 그 다음에 패널 내부의 스티로폼에 불이 옮겨 붙어야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검은 연기가 ‘뭉텅 뭉텅’ 올라오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는 스티로폼에 불이 제대로 붙었다는 확정과 같았다. 귀성은 위치가 위험하다 싶어서 산 위쪽으로 일백여 미터를 더 올라갔다. 마음 편하게 불구경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동네쪽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저것도 중근형님의 작전이기에 차질없는 진행을 보고있는 셈이었다.
지금쯤은 이층집 노인과 젊은이는 불을 끄기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닐 것이었다.
귀성은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있는 가운데서 가슴속의 후련함이 더 할 나위 없음을 느꼈다. 불꽃이 사그라들때까지 계속 지켜보고싶은 충동에 따라 불멍속으로 빠져들었다.
재경이와 태환이가 이층집의 수상한 단서를 확보했을지 궁금하여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그러나 지금 시간에 전화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잘 되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기로 했다.
그순간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 귀성은 “악!”하는 비명과 함께 아래 쪽으로 두어바퀴 나뒹굴어 떨어졌다. 오싹하게 소름이 돋은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올려다보니, 귀신인듯도 하고 사람인 듯도 한 무엇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11 댓글
귀성이 마저…. 헉!!!! 제발 무탈 하기를… 아지 큰 일이 없기를 …..
귀신이네~~ㅠ
헉!!!!! 또 다치면 안되는데.. 흑
소방에 관해 정말 알지 못하면 쓸 수 없는 디테일!! 자꾸 궁금해 미치겠어요
읽을 만하면 끝난다 우째 다음화를 기다릴꼬 ?
작가님 책임지십시요 !!
25화도 재밌네요! 잘 봤심뎌
26화는 언제?
감사합니다^^
이번화도 흥미진진하네요😍😍😍😍😍
연제 소설 코너가 있었네요 정주행갑니다.
뭐야 도대체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