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일은 화재현장을 꼼꼼히 살펴보고는 본국으로 긴급히 E-mail을 보냈다. 물차를 최대한 빠르게 도착하도록 요청을 했다.
누군가의 의도적인 방화가 분명하며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났다고 판단했다. 특히 욱일기 문양의 스테인레스 주전자가 사라지고 이층방의 서류가 흐트러진것은 그러한 판단을 가지게되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번 납치폭행건은 동이와 돌이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였으니 빨리 피신을 시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되었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자신들이 납치한 자가 소머리봉의 굴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영구미제의 사건으로 마무리 되었어야 했는데, 그자가 죽을 운명이 아니었는지 일이 꼬여 버린것이다. 사실은 동이와 돌이로 위장했던 스즈키와 나카무라가 좀더 잔혹한 마무리를 하지못한데서 나온 결과였다. 김진일은 두 녀석을 본국으로 보낸후 이번일에 대한 책임을 지우도록 보고서를 야무지게 쓸 참이었다.
시대가 바뀌어가니 조직원들의 일처리가 도대체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다.
김진일은 전기포터에 정종을 붓고는 데우기 시작했다. 요란한 잡음으로 데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영혼같던 주전자가 그리워졌다.
적막속에서 정종의 속삭임을 들으며 신비롭게 피어오르던 김이 아른거렸다.
김진일은 꿈을 꾸듯이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이 이루어져가는 과정이 상상되어 졌다.
앞선 조직원이 진척시켜놓은 성과에 의하여 반도의 최고지도자들은 무속과 친일의 퓨전에 젖어 원격 조종되는 만족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무속은 그들의 부인들로 하여금 정계를 장악하게 하고, 고위 군장성출신을 포섭하여 천황의 조상 아마테라스를 신으로 섬기도록 하면서 국방부를 휘어잡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의 부인은 원래 무속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 너무나 손쉽게 포섭을 했으며, 정작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작전에 젖어들고 있는것이었다.
장성출신은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었다.
전역후의 삶에 있어서 허망함을 느끼는 시기를 파고들어 미래에 있어서, 과거의 조선총독부 총독과 같은 중책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금전과 모든 정보를 제공했었다. 어쨌던 모든 계획이 착착 진행되어지고 결과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회는 이성을 잃은 극우로 치닫고, 국가정책은 미래가 없도록 중요연구비같은 훗날의 먹거리 사업에 관련된 것은 대폭 삭감되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VIP의 관저는 이전하여 다다미와 일식 정원을 흉내 낼것이며, 동족끼리는 대립하게 만들어 전쟁이라도 일으키면 그보다 더 만족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와 관련된 상당부분은 고위층의 부인들에 의하여 조종될 것이었다.
자신들의 조직이 간접투자 개념으로 진행했던, 범사회적 패러다임을 형성한다는 교수들에게 지원했던 연구지원금의 결과는 긴 세월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미미했다. 기껏해야 정신대는 매춘이라던지 일본이 반도의 근대화에 기여를 했다던지하는 주장 몇번이 끝이었다. 그나마도 진보쪽의 여론에 두들겨맞다시피 하고는 땅속으로 기어들고 만 것이 아니었던가. 지난날의 소극적 전략에서 적극적이고도 직접적인 전략으로의 전환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김진일은 몸으로 투쟁해온 현장 경험자의 입장에서 이론과 체면속에서 허우적대는 교수들의 나약한 모습은 비린내가 느껴질정도로 짜증스럽게 보여졌다.
전기포터의 불규칙적인 소리에 꿈에서 깨어나듯이 정신을 차린 김진일은 얼른 스위치를 껐다. 정종은 김이되어 허공으로 모두 날아가고 포터만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다.
김진일은 현실에서 긴급히 처리할일을 정리해 보았다.
조선인들이 제일 즐겨서 사용하는 홍길동과 갑돌이, 그기서 따왔던 동이와 돌이는 다시 스즈끼와 나까무라가 되어서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김진일은 둘을 불러놓고 차갑게 지시했다.
“본국에서 물차가 올때까지 너희 둘은 죽은듯이 본좌님의 안가에 숨어 있거라. 활어차가 페리호로 부산에 들어와서 속초로 가지않고 우리쪽으로 오도록 조치를 해 두었다. 열흘안에 물차가 도착하면 비밀칸에 숨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야”
“하이!”
김진일의 단호한 지시에 둘은 얼음처럼 굳어서 저절로 군기잡힌 대답이 튀어나왔다.
1 댓글
드디어 보게 되는 다음 화 이군요.. 정말 순식간에 다 읽어 내려 왔습니다.. 현실이 리얼리티 하게 반영이 되어 있어 정말 사실인 듯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이라 생각이 되니 더 몰입하게 되고 더 빈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쯤에 “데우던 정종이 김이 되어 사라지고…”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이게 만약 복선이라면 정말 시적이고 기가막힌 복선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죠… 연말이라 많이 분주 하실거라 생각 되어 집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올려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건강하게 마무리 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물론 연제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