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자(21)

by 서상조
A+A-
리셋

달완이가 지독한 시장기를 느낄때까지 밥이 들어오지 않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달완이의 머리에는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굶주림에 갈비뼈가 툭 튀어나온채로 골목길을 헤매는 길고양이가 떠올랐다.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길고양이의 밥을 꼭 챙겨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한것은 배가 고플수록 정신은 점점 맑아져서 어릴적 기억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부모님이 어떻게 안 계시는지는 할머니의 함구로 인해 알 길이 없지만 연탄가스 중독으로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새롭게 돋아나는 것이었다. 그뿐아니라 지난 시절의 어눌했던 삶이 부끄러운 파노라마로 펼쳐져 갔다. 혹독한 환경에 처하면서 달완이의 뇌는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다만 부모님에 관한것 만큼은 끝까지 모른채 살기로 했다. 알고자하면 할머니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될것이고, 자신도 그 불행이 구체적으로 기억에 각인될것이기 때문이었다.
“덜컥”하고 문소리가 나더니 쟁반 들이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그 소리가 조금은 무겁게 놓이는 듯 했다. 허기진 채로 문 쪽으로 다가설 때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순간 달완이는 눈을 감싸고 바닥에 엎드렸다. 자칫 실명을 할것 같은 느낌에 한동안 꼼짝도 하지않고 기다렸다. 조심스레 실눈을 뜨고 불빛에 적응을 했다. 눈을 반쯤 뜨고 꽤 긴 시간을 보내고서야 공간을 제대로 둘러 볼수 있었다. 그야말로 방치된 공간에 자신이 버려지듯 팽개쳐져 있었다는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문앞에 놓인 쟁반에는 기다리던 밥이 아니라 1.5L는 되어 보이는 물통과 꽤 양이 많아 보이는 삶은 고기가 놓여 있었다. 간장 양념이 되었는지 먹을만한 고기였다. 달완이는 허겁지겁 고기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노랗게 비치는 물통을 열어보니 물이 아니라 맥주인듯 했다. 술을 마다하지 않는 달완이는 같이 들어온 종이컵에 연거푸 부어 마셨다.
부른 배에 술을 들이킨 달완이는 온몸을 휘감는 취기에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데 술이 맥주가 아닌듯이 취하는 정도가 달랐다. 불콰해지는 것을 느낄때 쯤에 불이 갑자기 꺼졌다.
달완이는 불이 꺼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 기분에 깊이 빠져들었다. 자신의 정신이 아닌듯 갑자기 모든것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내면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용기가 솟아나서 백명의 괴한과 마주쳐도 물리칠것 같았다. 심지어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의 몸을 굳이 가누고자하는 마음이 없었다. 입을 벌리고 깜깜한 천정을 바라 보았다. 북두칠성이 보이는듯 하다가 눈을 껌벅이고나면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공간은 더넓은 대지일것 같은 생각에 내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소변이 마려워 볼일을 봐도 새롭게 느껴졌다. 배설의 쾌감이 새삼 깊이 느껴지면서 아랫도리가 따스해 왔다.
이렇게 안온하고 편한세상에 산다는것이 진정한 행복일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스라하게 또 하나의 세상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달완이는 갑자기 뜻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컴컴한 구석에서 귀신이라도 나올것 같은 공포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몸을 구석에 처박은 채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달완이의 뇌속에서 형언하기 힘든 기이한 소리가 달완이의 온 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관련 뉴스

16 댓글

강기철 2025년 05월 20일 - 10:28 오전

마치 다시 5공 시절 대공분실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낍입니다… 그때 공안검사는 자기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빨갱이 인지 아닌지 알아 볼 수 있다는 전지전능한이 아닌 전지개능한 개소리를 지껄였다는…..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절을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수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지나 온 민족이라는 것이 이 얼마나 인류사에 다시 없을 자랑스런 일인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되는 아침입니다… 위대한 민족 중에 몇 안되는 위정자들이 그 위대성을 시험하는 작금의 형국이 오버랩 되면서 불현듯 입을 앙 다물고 꽉 쥐었다 풀어 보는 빈 주먹 입니다…

답글
꽃놀이@ 2025년 05월 21일 - 3:08 오후

어떡해? 달완이 ㅠㅠ

답글
shot7 2025년 05월 21일 - 3:09 오후

미친….. 음!! 이런 시절이 있었지..

답글
fafa 2025년 05월 21일 - 3:09 오후

작가님.. 너무 몰입됩니다.. 잘쓰시네요

답글
사사건건 2025년 05월 21일 - 3:10 오후

달완이한테 무엇을 먹였을까? 아..

답글
찐새임 2025년 05월 21일 - 3:15 오후

생지욕이 따로 없네.. 몰입만땅

답글
지니 2025년 05월 21일 - 3:15 오후

와유~~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다음화는 언제?

답글
나는나 2025년 05월 21일 - 3:17 오후

부들부들!!!!

답글
가을비 2025년 05월 26일 - 10:46 오전

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되네요!

답글
sss222 2025년 05월 26일 - 10:46 오전

한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ㅎ

답글
shot7 2025년 05월 26일 - 10:47 오전

몰입도 미쵸따!!!!

답글
WindWhisper 2025년 05월 26일 - 10:48 오전

재밌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해요

답글
2025년 05월 26일 - 11:01 오전

와우!!! 22화는 언제요?

답글
tts32s 2025년 06월 04일 - 9:16 오전

22화 기다립니다!!

답글
este00 2025년 06월 04일 - 9:16 오전

잘 보고 있어요**

답글
몽이 2025년 11월 26일 - 9:15 오후

나쁜놈들 ㅜㅜ 달완이 살려줘 ㅜㅜ

답글

댓글을 남겨 주세요

발행소 : [40135]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1길 7-1(헌문리) | 대표전화 : 010-6500-3115 | 사업자 : 뉴스파이크 | 제호 : 뉴스파이크
등록번호 : 경북 아00799 | 등록일 : 2024-07-22 | 발행일 : 2024-10-15
발행인 : 이길호 | 편집인 : 김복순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길호 | 청탁방지담당자 : 진금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