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은 높이 치하 할 일이나 현재로서는 30km 영역을 유지하기 바랍니다. 본께서 활동이 여러 방향으로 뻗쳐있으니, 보조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본국으로부터 영역 유지의 답이 돌아왔다. ‘할 수 없지. 조금 더 미루어 놓았다가 시간적 여유가 가능할 때 순례에 올라야지’
김진일은 억지 자위를 하면서 영역 안에 위치한 고천원고지를 둘러볼 결심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였다.
국폐소사격인 경성신사가 서울의 대학 캠프스에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고천원도 지방의 대학 캠프스 안에 위치하고 있기에 일요일로 택일하여 찾아갔다.
계절은 여름과 가을이 서로 얽혀있는 10월 초순이었다.
일요일이었지만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캠프스를 산책하는 듯이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상황부터 살핀 후에 언덕 위에 자리한 고천원으로 올라갔다.
홍살문이 세워져 있는 안쪽으로 들어서서 비석 앞의 큼직한 자연석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김진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이 고천원은 조선인이 스스로 반도를 바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실 고천원을 캠프스에 설치한 것은 대학 설립자이며 대학총장인 자가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일본인들의 성지로 만들어 일본 관광객을 끌어 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의 인지도가 오르고 입학생 유치에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진일의 판단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기에 마음속으로 짜릿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 고천원이 천황의 고향이라고 조선인의 입으로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뿐 아니라 조선 땅의 또 다른 곳, 그러니까 춘천과 거창의 어느 지역도 열도의 학자들이 그곳이 고천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띄워 놓았더니 경쟁적으로 맞장구를 쳐대고 있는 상황이다. 김진일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모래에 물이 스며들듯이 이 땅을 접수하고야 말 것이다. 내 명이 허락 치 않는다면 다음 세대가 되더라도 기필코 천황의 영역으로 깃발을 꽂을 것이다. 찬란한 욱일기를 말이다’
결심의 마음이 쇠처럼 단단했다.
천황의 고향이라면 이 땅은 당연히 천황의 것이고, 또 천황의 백성인 열도인의 것일 것이다. 김진일은 한 인간의 잘못된 영욕이 대립하고 있는 상대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기회의 선물인지 꿈에서도 모르고 있을 조선인들이 가소로웠다.
고천원고지에 앉아 캠프스를 내려다보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삼삼오오 다니는 저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방어적 역량이나 키우고 있을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짚어보면 조선인들은 외세를 의심하지 않고 내적 권력 다툼에 집착하는 유전 인자로 인하여 항상 민족적 아픔을 안고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기네끼리만 싸울 줄 알았지 대외적으로 싸울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남이 싸움을 걸기 전에는 싸우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영토를 탐내는 일도 결코 없음은 이상스럽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자신이 지금과 같은 거대하고도 기나긴 프로젝트의 중심에서 볼 때는 엄청나게 다행스럽고 기운이 솟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김진일은 홍살문의 기둥을 만지며 아이러니의 극치를 느꼈다. 천황의 탄생지에 홍살문을 세운 것은 어리석은 조선인의 무지한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열도에 있는 야스쿠니신사의 분신일 뿐이라고 비웃었다. 여기가 고천원이면 조선인이 세워둔 ‘홍살문’은 신사앞에 세워진 ‘도리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캠프스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414
이전 뉴스
8 댓글
이화여대 김활란 동상과 동대구역에 세워진 다까끼 마사오 의 동상 그리고 이승만의 동상이 불현듯 생각이 납니다… 과연 누가 이들을 보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보수의 최고 가치는 전체주의에 맞먹을 정도의 근성으로 나 보다는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라 하겠으나 이들의 행적 그 어디에도 국가와 민족은 없으니 그야말로 반민족 세력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삶의 전부를 배반과 탐욕으로 채운 자들의 말로를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쥐었던 주먹을 다시 펴며 마지막을 읽습니다…
와 소름돋는 전개! 김진일 진짜 악질이네. 고천원을 일본 성지로 만들려는 발상부터 소름 ㅠㅠ 다음 편 빨리 보고싶다
김진일 캐릭터 잘만들었네. 한국적인 이름부터 …윽. 우리나라의 누구 보는듯.김진일의 잔혼학ㅁ과 야망이 섬뜩하면서도 흥미진진해… 다음 화 어떻개ㅔ 될지 궁금해 미치겠네요.ㅋ
소설 내용이 좀 무겁긴 하지만, 김진일의 야망과 그 속내를 섬세하게 묘사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음모를 꾸밀지 궁금합니다. 계속 연재해주세요!!
김진일 캐릭터 엄청 입체적이야.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자신만의 신념과 목표를 가진 인물이라는 거. 그의 행동에 동기가 명확하게 드러나서 더욱 몰입감 있게 읽히는 건 같아.. 김진일… 무서운….
서상조 작가님!!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얼마나 절묘하게 섞어서 썼는지 놀랍워요! 김진일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역사의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 같아요. 고천원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역사적 상상력을 선사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소설 속 김진일의 야망은 섬뜩할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 정치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저뿐일까요?
뜨앗. 언제 8화가… ㅎ ㅎ 기다리던 소설 맛나게 먹고 갑니다. 다음 9화 득달같이 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