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자(7)

by 서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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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김진일은 TV를 켰다. 뉴스와 다큐멘트리만 보던 그는 오랜만에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어느 순간 “아!” 하고 머리에 전기 쇼크가 온 듯이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조선의 TV방송에서 열도의 노래를 듣다니 김진일은 쇼파에 쓰러지듯 앉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근래에 있어서 우연인지, 아니면 은밀한 작업에 따른 것인지는 몰라도 긍정적인 현상들이 자주 나타나고 있었다.
김진일은 이어서 나오는 조선의 트롯과 열도의 귀에 익은 가락을 번갈아 들으며 귀의 호강을 즐기고 있었다. 도취에서 벗어나 자막을 살펴보니 ‘한일톱텐쇼’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언제나 깊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놀랄만한 일들을 목도하면서 김진일은 더더욱 목숨바쳐 이루고 말아야 될 평생의 대업이라고 확신했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일을 실천해야 될 때라고 생각하면서 주전자에 정종을 데우기 시작했다. 금새 김이 나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묘한 모양을 그리며 천정으로 오르고 있었다. 피어 오르는 김이 틀림없이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믿으면서 김진일은 온갖 상상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방안에는 정종의 묘한 김 만큼이나 김진일의 상상도 점차 풍요로워져 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하루 빨리 마무리 하고 싶던 반도의 ‘국폐소사’ 순례가 급하게 마음을 조여왔다. 몽롱함에 빠진 듯 반쯤 감긴 눈으로 정종의 피어오르는 김은 무지개 빛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국폐소사’
김진일이 꼭 한번은 순례를 마쳐야 될 일이라 다짐하면서 그 기회의 시간만을 요량하고 있었던 성서러운 대상이었다. 비록 지금은 대학교가 들어서 있지만 그 기운은 살아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원래의 신사명은 ‘경성신사’지만 사격이 올라 ‘국폐소사’로 대접받았으니, 그 영험함은 김진일에게 큰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리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부산의 ‘용두산신사’와 함께 1936년에 ‘국폐소사’로 특별히 지정된 신사였다. 조선을 지배하던 당시에 일본인에게는 단일신사가 아니었다. 다른 계열로 ‘조선신궁’과 ‘경성호국신사’가 있었고 같은 계열의 신사도 여러 곳에 있었다. 하지만 ‘국폐소사’인 ‘경성신사’만이  8월 29일에 ‘일한병합기념제’를 지냈던 것이다. 그날이 바로 조선인들이 아직껏 부끄러움으로 표현하고 있는 소위  ‘국치일’인 것이다.
김진일은 실낱같은 바람 한줄기라도 모아서 대업을 이룰 심산이었기에 그 기운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쉬익!”하는 소리에 김진일이 놀라서 정신을 차려보니 주전자는 몇 방울의 남은 정종을 마지막 김으로 내뿜으려고 요란한 소리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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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강기철 2024년 12월 18일 - 11:06 오전

이미 김진일의 정신 상태는 정신 질환인 편집증 중증기를 넘어서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작금의 국기를 흔드는 자칭 보수 유튜브의 광기를 보는 듯 합니다… KBS에서 흘러 나왔던 기미가요는 정말 머리칼이 서도록 섬뜩했던 기억이 다시 떠 오릅니다… 복잡한 내면의 응어리진 것들이 막 뒤엉키는 느낌으로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 갑니다… 아!.. 다음화가 없다니.. 빨리 올려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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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소나무 2024년 12월 21일 - 9:30 오전

소설속에 있었던 일이 실제 일어났었어요…얼마나 끔찍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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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560 2024년 12월 27일 - 10:17 오전

무섭다~ 김진일!! …나쁜XX.. 그런다고 이 나라를 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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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새임 2024년 12월 27일 - 10:22 오전

작가님!! 이번 편도 올려주셨군요.. 잘 읽고 갑니다.^^다음편도 휘리릭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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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디팡팡12 2024년 12월 27일 - 11:26 오전

뜨하~~ 소설이 초반임에도 뭔가 큰일이 어떻게 벌어질까 궁금 궁금!!! ㅎㅎ 언제쯤 김진일의 잔머리가 펼쳐질까요? ㅋ
다음편도 얼릉 보고 싶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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