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본문제연구소의 별실에 사쿠라이는 꽃다발을 목에 걸고서 앉아 있었다. 소장은 비단으로 곱게 보듬어 싸 놓은, 각이 진 물건을 가져와서 비단의 매듭을 풀었다. 벚꽃이 수 놓인 비단을 걷어내자 까맣게 옻 칠로 마무리 된 상자가 나왔다. 소장은 두껑을 조심스레 열고는 스테인레스로 된 작은 주전자를 꺼집어 내 보였다. 주전자의 옆면에는 욱일기가 음각으로 각인 되어 있었다. 스테인레스가 두터운 터라 작아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 밑에는 흰 봉투가 있었는데, 소장이 카드처럼 빳빳한 종이를 꺼내서 사쿠라이에게 건넸다. 그 종이에는 쇠금 자와 나아갈 진, 그리고 일본을 뜻하는 날일 자가 쓰여 있었다.
“사쿠라이! 이 순간 부터 너는 조선인 김진일이다. 우리 대 일본 제국이 대륙으로 칼을 앞세워 나아간다는 뜻으로 김진일로 이름을 지었으니, 너 혼자만 그 뜻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거라. 그리고 이 주전자는 네가 외롭거나 또 반대로 기쁨이 충만할 때 정종을 데워 마시거라. 그리하면 너의 피는 열도의 기운으로 태양처럼 끓어 오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조선의 18년 장기 집권자가 최측근으로 부터 시해 당하고 군부의 정권 장악 움직임에 조선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혼란스러우니 즉시 건너가서 35년의 공백을 메우거라. 가서 우리가 재력으로 키워둔 개들을 풀어서 자신들의 민족혼을 물어 뜯도록 시켜라”
김진일은 안락의자에 앉아 꿈을 꾸듯이 44년 전 조선으로 건너오던 순간 속으로 빠져들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국가기본문제연구소의 추진력과 그 세밀함이 대단했다. 귀화 서류 등 필요한 것은 필요한 시점에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반도에 키워둔 사회 유력 인사들도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골짜기에 있어도 무엇 하나 불편함이 없도록 그때부터 지금껏 완벽히 배려를 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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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문장을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더 문장 속으로 빠져든다는 생각 입니다.. 짧을 글 안이지만 한 장면이 끊기지 않고 연속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이 되니 짧은 글 인데 외려 긴 동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집중도가 상당 합니다… 더우기 작금의 시절과도 맞닿은 이야기의 소재가 더욱더 리얼하게 느껴 집니다.. . 다음화가 다시 기다려 집니다…
회가 거듭 될 수록 점점 더 흥미 진진 해집니다…길지 않은 글에서 마치 긴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디 악인에겐 그 악 만큼의 벌이 선인에겐 그 선 만큼의 좋은 일이 생기길 …..